1990년대 초반 인천시는 총인구 270여만 명이지만 충남출신자는 110여만 명으로 전체의 1/3을 훨씬 초과하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이러한 현상은 인천시에서 1960~80년대 충남도민의 전입이 지속적으로 대세를 형성한 결과로 풀이된다. 1950년대 황해도민의 유입은 피난을 목적으로 하는 비자발적 이주였다면, 1960~80년대 충남도민의 전입은 보다 나은 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자발적 이주였다. 1960년대 중반부터 인천시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크고 작은 공장들이 육성되고 나아가 공장들이 모여 있는 공단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인천시에서 제 2차 산업은 물론 제 3차 산업이 급속히 성장함에 따라 농업보다는 높은 수입을 보장하는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었던 것이다.
류지헌, '인천시 아이덴티티 형성의 인구․문화적 요인'
인하대학교사회과학연구소의 1, 2차 시민조사에 따르면, 현재 인천의 출신별 인구분포는 인천,충청,서울,경기,전라,경상,강원,이북,제주의 순으로 각기 대략 28%, 16%, 14%, 12%, 11%, 11%, 5%, 2%, 1%로 되어있다. 이는 인천이 여러 곳의 사람들이 골고루 모여 사는 개방적인 땅임을 알려주고 있다.
같은 책의 인명록분석에서는 고위공무원, 초중고 교감과 교장, 언론인, 교수, 기업체 경영진, 지방의원 단체장 국회의원, 시민사회단체장, 판검사 변호사 세무사 관세사, 문화예술인 건축사, 의사 약사 한의사, 기타전문직으로 나누어 모집단 4432명을 분석하였고, 엘리트설문조사에서는 주요인사 917명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하였다.
주요인사들의 인명록분석에서 본인출생지는 인천, 경기, 충청, 서울, 경상, 전라, 이북, 강원, 제주의 순으로 각기 39%, 13%, 12%, 11%, 10%, 6%, 6%, 2%, 1%였고, 설문조사의 경우도 거의 비슷하게 35%, 10%, 14%, 16%, 8%, 10%, 2%, 3%, 1% 였다.
90년대 후반 '열려있는 땅 인천'에 따르면 인천>충청>서울>경기>전라>경상>강원
당진군과 서산시 출신자들은 해상 교통을 이용하여 인천항으로 들어온 다음 중구와 동구를 중심으로 정착하였으며, 그 후 인천시의 성장에 따라 남구(주안 포함)와 남동구로 거주지를 이동하였다. 그 결과 1990년대 당진군 출신자들은 부평구를 제외하면 남구, 남동구, 동구 순으로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의 거주지 집중률이 가장 높은 순서는 주안동, 송림동, 숭의동, 구월동, 도화동, 용현동, 만수동이었다. 서산시 출신자들은 초기에 중구를 중심으로 정착한 다음 인천시의 성장 방향을 따라 용현동, 송림동, 주안동으로 거주지를 확장하였다. 1990년대 그들은 당진군 출신자들과는 약간 다른 양상으로 남동구, 남구, 부평구 순으로 집중적인 거주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그들의 거주지 집중률이 가장 높은 순서는 주안동, 만수동, 구월동, 간석동, 용현동, 부평동, 십정동이었다. 태안군 출신자들은 특이하게도 당진군․서산시 출신자들과 다르게 거주지가 부평구에 가장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의 거주지 집중률이 가장 높은 순서는 부개동, 십정동, 송림동, 청천동, 만수동, 구월동, 부평동으로 배열되었다.
출발지 ‘(2) 유형’은 충청남도에서 가장 내륙 방면에 위치하고 있는 시․군으로 인천시로의 이주 인구가 ‘(1) 유형’ 다음으로 많다. 여기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공주시․논산시․금산군 출신자들이 ‘(1) 유형’ 출신자들과는 달리 효성동에 가장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천안시․연기군․대전시 출신자들은 산곡동에 가장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출발지가 충청남도 내륙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해로보다는 육로를 이용하여, 서울시를 거쳐 서울시에 가까운 효성동과 산곡동으로 이주하였다고 추정된다. 1980년대부터 효성동과 산곡동은 공업단지가 대대적으로 조성되어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면서 공주시․논산시․금산군 출신자와 천안시․연기군․대전시 출신자들을 집단적으로 흡인하였던 것이다.
충남도민은 인천시로의 이주 초기에 대부분 취업의 기회가 많은 중구와 이에 인접한 동구와 남구에 정착하였다. 여기에는 대성목재, 항공유리, 대한중공업(인천제철의 전신), GM대우 등과 같은 대형 제조업체들이 입지하고 있었다. 충남도민은 우선 이러한 제조업체 근처에 집을 얻은 다음 직장을 구하는 방식으로 객지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충남도민의 출발지는 포구에 대한 접근성과 내륙성을 기준으로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1) 당진군․서산시․태안군, (2) 공주시․논산시․금산군 또는 연기군․대전시․천안시, (3) 부여군․서천군․보령시․청양군 또는 홍성군․예산군․아산시.
여기에서 출발지 ‘(1) 유형’은 해안을 끼고 있는 곳으로 인천시로의 초기 이주에서 주류를 형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