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2011. 6. 25. 18:03

괴짜 천재들의 제국… 그들은 '보통 사람'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스티븐 레비가 2년간 파헤친 '구글의 속살'
SAT 만점, 사회성 낙제집단…
구글 최후의 꿈 '인공지능'…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스티븐 레비 수석기자는 뉴스위크에서 IT팀장을 맡고 있던 1998년, 미국 주류언론으론 처음으로 신생 기업 구글의 검색 엔진을 특집 기사로 실었다. 이 기사를 계기로 구글과 인연을 맺었고, 그 후 구글의 성장 과정을 취재했다. 구글이 특정 기자에게 '플라이 온 더 월(fly on the wall·현장 밀착 취재)'을 허용한 것은 전무후무하다. 레비 수석 기자는 2년 동안 구글 플렉스에서 독점 취재한 내용을 책으로 묶어 지난 4월 미국에서 출간했다. 제목은 'In The Plex: How Google Thinks, Works, and Shapes Our Lives(구글 안에서:구글은 어떻게 생각하고, 일하며,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나)'. 레비 수석기자가 지난달 뉴욕에서 들려준 구글 이야기를 정리해 게재한다. 괄호 안 내용은 Weekly BIZ가 붙인 보충 설명이다. 

2007년 구글이 한 프리랜서 기자에게 미국 캘리포니아 본사의 문을 개방했다. '구글플렉스(Googleplex· Google+complex)'로 불리는 자신의 성지를 2년 동안 취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사내에서조차 '점(點)조직' 방식의 비밀주의로 일관하는 구글로선 파격적인 실험이었다. 선택받은 기자는 같은 해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IT팀장)를 그만둔 스티븐 레비(Levy·60). 현재 뉴욕의 IT 전문 월간지 '와이어드(WIRED)' 수석기자다. 그는 말했다.

"구글은 초조한 듯했다. 초일류기업의 수퍼엘리트주의가 구글을 '사악한 거대기업' 얼굴로 바꾸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듯했다. 그들은 기자라는 창(窓)을 통해 대중의 그런 오해가 풀리길 기대하고 있었다." 1998년 창업 이후 구글 창업자가 내세운 기업 슬로건은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였다.

세계 검색시장의 70%를 장악하는 최강의 천재집단 구글. 2007년은 이런 구글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된 해였다. 천재성과 빠른 속도로 온라인 세상의 모든 흐름을 주도해 가던 구글이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서 패한 것도, "세상의 모든 책을 스캔하겠다"고 선언해 세계 저작권자들의 공분을 산 것도, 중국 정부의 검열에 굴복해 고객의 개인 정보를 제공한 것도 그 시기였다. 구글은 어느덧 '착한 다윗'에서 '악한 골리앗' 이미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레비 기자가 2년 동안 본 구글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자신에게만 문을 열어준 구글의 현실에 대해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10~20년 내에 지금 누리지 못하는 거대한 무언가를 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제시할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세상을 무섭게 만들지, 행복하게 만들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지난달 27일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있는 와이어드 사무실에서 레비 기자를 만났다. 그가 Weekly BIZ 독자에게 전하는 구글플렉스의 내부 이야기.

왜 SNS 싸움에서 패했나?

2007년 취재를 위해 구글에 들어갔을 때, 데니스 크롤리는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뉴욕대 재학 중 위치 기반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인 '닷지볼'을 만든 천재였다. 구글은 2005년 "구글의 SNS를 육성한다"며 닷지볼을 사들였다(매입액 3000만달러 추정). 개발자 크롤리도 이 때 구글에 합류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르게이 브린(구글 공동 창업자·기술 부문 사장)이 와서 개발 과정이 어떻게 돼 가느냐'고 물었어요. '죽 쑤고 있다'고 했죠. '그러니 제발 엔지니어 좀 지원해 달라'고. 브린은 그 자리에서 '그러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더라고요."

크롤리는 그 해 구글을 나갔다. 그 후 닷지볼의 성공적 후속작인 '포스퀘어'를 개발했다. 구글은 닷지볼 서비스를 2009년 중단했다. 그는 "구글 창업자가 조금만 관심을 보였어도 닷지볼 이용자가 100만명은 가뿐히 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만든 후속작의 이용자는 현재 1000만명.)

페이스북이 가입자를 5000만명으로 늘리면서 구글의 명성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2007년. 제품 개발 디렉터인 조 크라우스(현 구글벤처스 파트너)는 2008년 여름 자기 집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SNS에 대한 아이디어를 함께 이야기하는 파티였다. 크라우스는 "어떤 면에서 SNS가 구글 검색을 능가하더라"며 이렇게 말했다.

"얼마 전 결혼기념일을 맞아 아내에게 줄 선물을 고민했어요. 구글 검색창에 '6번째 결혼기념일 선물 아이디어'라고 입력했지요. 초콜릿, 사탕, 다리미 같은 구닥다리 목록만 뜨더군요. 이번엔 구글톡(구글의 메신저·SNS의 일종)에 '결혼기념일 선물 아이디어 주실 분'이라고 물었어요. 그러자 유럽에 있는 동료로부터 케이크와 캔디로 기념품을 만드는 예술가 겸 제빵사 소개까지 들어왔어요."

구글은 페이스북과 같은 형태의 SNS인 '오르컷'을 운영하고 있었다. 오르컷을 살리기 위해 화면을 파란색으로 칠하고 이름을 바꿔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런데 누군가 "구글은 왜 '페이스북 킬러'를 만들지 못할까?"란 질문을 던졌다. '왜 적극적으로 페이스북을 공격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크라우스는 그 자리에서 말했다. "남들 따라가는 것이야말로 구글이 정말로 잘 못하는 분야잖아."

구글 직원들은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CEO)와 브린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흥미있는 분야엔 열광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철저히 무관심한 성격을.

구글이 시도한 SNS는 오르컷과 닷지볼만이 아니다. 구글버즈(트위터처럼 단문 메시지 중심)·구글웨이브(이메일과 채팅 기능을 합성)·구글톡 등 많은 SNS가 퇴출당하거나 사실상 실패 판정을 받았다. 다들 사용법이 너무 복잡하고, 다른 회사 서비스를 서투르게 따라 하려 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구글 본사의 카페테리아에서 팀장급 직원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래리(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주기적으로 미래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와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해준다"고 말했다. 구글 직원들이 곧잘 이야기하는 농담이라고 했다. 세계 최고의 천재들이 모여 있지만, 구글 역시 창업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는 뜻이다. 실제로 판단을 내리고 현장을 지휘하는 것은 두 창업자였다.

문제는 창업자 두 사람이 일반인들의 생활과 밀착된 공간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수다와 신변잡기로 가득 찬 SNS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구글 창업자는 '알고리즘'만 믿었다. (알고리즘은 정교하게 설계한 수학 원리에 따라 컴퓨터에 가장 적합한 실행 명령을 내리는 절차.) 사람들이 왜 알고리즘에 입각한 구글의 과학적 검색보다 친구의 개인적 추천에 의지하는지, 구글의 두 천재 창업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SNS는 점점 세상을 점령했다.

 스티븐 레비 수석기자
창업자의 붕어빵 천재 조직

1999년부터 2005년까지 구글에서 소비자마케팅 디렉터로 일했던 더그 에드워즈는 이렇게 말했다. "엘리트만 뽑으면 집단사고(Group Think)를 하게 될 거라 경고했어요. 직원 모두가 같은 배경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다양하게 뽑으라고 충고했어요."

구글 입사는 하버드대 입학보다 어렵다고 한다. 입사 지원자들은 SAT(미국의 수학능력시험)와 학점이 만점에 가까워야 했다. 출신 대학도 대부분 스탠퍼드·버클리·MIT에 한정돼 있었다. 구글의 두 창업자는 초기부터 이런 조건을 따졌다. 초창기에 두 창업자는 세계적 천재들이 몰리던 마이크로소프트(MS) 연구소나 카네기멜론대 컴퓨터학과의 취업게시판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들을 쫓아가 채용 인터뷰를 했다.

1999년 창업 초기에 이렇게 낚아올린 대어가 UC 샌타바버라 컴퓨터과학 교수였던 우르스 헬츨(현 구글의 수석 부사장)이다. 그는 구글에 입사한 뒤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를 바꿔 구글의 검색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수퍼엘리트주의야말로 구글이란 신생 기업을 단시간 내에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든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하지만 구글은 성장한 뒤에도, '집단사고'의 위험성이 제기된 뒤에도 이런 채용 방식을 바꾸지 않았다. 화려한 경력을 지닌 실리콘밸리의 베테랑 엔지니어 R. J. 피트만조차 구글의 경력직 채용과정에서 SAT 성적과 학점 증명서를 요구받았다.

사실 두 창업자는 자체 연구를 통해 SAT와 학점이 입사 후 성과와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수치를 원했다. 성적이 지능과 성실성을 알려주는 가장 객관적 자료라 생각했다. 46~60일 동안 8번의 면접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채용의 최종 승인도 언제나 창업자 몫이었다.

창업자 페이지는 이렇게 말했다. "시시콜콜 간섭하는 게 아니에요. 어떤 사람이 들어오는지를 알아야 (조직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어요." 창업자 브린도 말했다. "나는 정말 뛰어난 학생이었어요. 우리는 우리와 같은 사람만 뽑아요. 최고의 지능과 기술 수준을 가진 야심가. 기술 기업의 운명은 세계적 수준의 엔지니어와 과학자의 손에 달린 겁니다."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가 입사 원서를 냈다면 구글은 그를 받아줬을까? '심리학 전공의 하버드대 중퇴' 학력은 구글 서류전형에서 결격 사유에 해당했다. (페이스북의 모태가 된) 여대생의 외모 평가 인터넷 사이트를 만든 행위 역시 품성을 중시하는 구글 면접의 결격 사유에 해당했다. (저커버그는 자신을 찬 여자친구에게 복수하기 위해 학교 서버를 해킹해 이 사이트를 만들었다.)

구글의 수퍼엘리트주의는 구글이 플렉스(구글 본사) 밖을 이해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책을 스캔해서 온라인에 올려놓겠다는 '구글북스' 사업이 한 사례였다. 대형 출판사 편집자인 데이비드 글레이저는 이렇게 말했다. "누가 돈을 버는 문제가 아니었어요. 구글이라는 한 기업이 세계 모든 지식을 수집한다는 목표 자체가 무서운 겁니다."

하지만 구글 내부에선 이런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2008년 팀장급 회의에서 구글북스 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30대 초반 팀장이 입을 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편집자들이 우리를 욕하는 걸 보고 충격과 상처를 받았어요. 사람들이 18세기 고문서부터 최신 소설까지 검색해 볼 수 있다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어요."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꾸는 날

구글플렉스를 취재한 2년 동안, 구글은 SNS 세계에서 실패했다. 하지만 구글의 성장은 계속됐다. 세계 검색의 70%는 구글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유명 브랜드 평가기관인 브랜드 파이낸스는 올해 구글을 세계 최고 브랜드 기업(브랜드가치 443억달러)으로 선정했다.(구글의 작년 매출은 283억달러, 순이익은 85억달러에 달했다.)

두 창업자는 흥미 없는 분야엔 철저히 무관심했지만 흥미있는 분야엔 열광했다. 그것은 창업 당시부터 구글을 관통하는 키워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두 창업자 페이지와 브린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모으고 그 정보를 알고리즘으로 가공해서 인류 지능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들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 브린은 "사용자가 무언가 생각하는 순간 구글이 그 답을 내놓을 정도로 똑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페이지는 "그것이 궁극의 검색 엔진"이라고 했다.

구글은 지난 수년 동안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 개발에 열중해 왔다.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애플은 검색사업에 뛰어들지 않았는데, 구글은 왜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드느냐"고 항의했다. 하지만 구글이란 조직에서 스마트폰은 사람들을 구글이 구축한 인공지능에 끌어들이는 통로일 뿐이다. 작년 1600㎞를 운전자 없이 달린 구글의 무인자동차 역시 레이저와 센서를 통해 세상의 지형지물과 환경 정보를 촘촘하게 수집해 인공지능의 완성도를 높이는 도구에 해당한다.

모든 정보를 품속에 모으고 고도의 알고리즘을 통해 이를 가공하는 구글은 10~20년 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무언가를 세상에 제시할 것이다. 누군가의 말대로 무서운 것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행복한 것일 수도 있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2년 취재를 마친 날, 내게 이렇게 말했다.

"페이지와 브린(공동창업자)이 구글을 개발했을 때 그들은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했어. 그래서 그들은 기업을 키운 거야. 발명만 하다가 외롭게 죽고 싶지 않았거든. 규모가 커야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물론,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것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고."

출처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24/2011062401060.html 
김남인 기자 kni@chosun.com 

Posted by ikSkyLand